박정희 대통령의 생애
박정희 대통령은 본관(本貫)이 고령(高靈)이며 직강공(直講公)의 15 세손인 박성빈(朴成彬) 공과 수원(水原) 백씨인 백남의(白南義) 여사의 다섯째 아들로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태어났다.
1945년 건군과 함께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국군의 주요 지휘관을 역임하고, 1961년 5.16 군사혁명을 주도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고, 1963년 육군대장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 제5대부터 1979년 제9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을 역임하는 동안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서 오천 년 이래의 가난을 물리치고 자립 경제와 자주국방의 터전을 닦아 세계 속의 풍요로운 한국으로 부각시켰으며, 겨레의 염원인 평화적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민족중흥을 이룩한 영도자로서 민족 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1979년 10월 26일 서울에서 향년 61세로 서거하여 삼천 칠백만 온 국민의 애도 속에 11월 3일 국민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陸英修) 여사는 관성(管城) 육씨(陸氏) 육종관(陸鐘寬) 공과 경주(慶州) 이씨(李氏) 이경령(李慶齡) 여사의 둘째 딸로, 1925년 11월 29일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나 1950년 12월 대구에서 혼례를 올렸으며, 1974년 8월 15일 서울에서 향년 49세로 순국하였다. 8월 29일 국민장으로 대통령 묘 왼편에 쌍분으로 안장되었다.
---------------------------------------------------------------
육영수 여사께서 문세광의 흉탄에 쓰러져 돌아가신 때가 바로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밀양 얼음골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북괴의 만행이 저질러졌는데, 거기에도 빠지지 않고 문가가 등장을 했다. 치가 떨리고 소름이 끼치는 만행에 그 당시 함께 있던 친구들과 라디오 생중계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흥분을 했었다. 그런 충격적인 상황을 겪고도 그 이후에도 큰딸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꿋꿋하게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을 위해 불철주야 헌신했던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그 이후 군 생활을 하던 1979년 10월 26일, 저녁에 소대장과 함께 공항동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상이 걸리면서 부랴부랴 부대로 복귀를 하였었다. 그 이후 계속 데프콘 단계가 올라가면서 무슨 일인가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다음 날 아침 점호를 하는 오전 6시 라디오 뉴스를 들으니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수행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라는 발표가 있었다. 결국 김재규의 흉탄에 이번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이었다. 위대한 지도자를 한 순간에 잃는 비운의 대한민국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결국 민주팔이와 평화 놈팡이들 세상의 출발이었다.
국가관도 가치관도 없이 입으로만 농사짓는 붉은 이념의 양아치들이 반공을 국시로 한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로 대한민국의 여기저기에 암적 존재로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 시점이었다. 아직도 박정희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이를 가는 붉은 양아치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한 마디로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발전과 부흥을 저주하고 오로지 북괴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악귀와 다름이 없다. 현 정권의 무능과 무식, 허위날조와 위선, 불법과 부정으로 이들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났기 때문에 이참에 완전히 뿌리를 뽑아 제거해야만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