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스무살이 본 박정희

묵안 2022. 1. 23. 09:12

오늘 서울대 면접고사가 있었다.
내가 아는 어느 친구가 그 면접에서 받았던 질문이라고 한다.
그 친구는 소개서의 서목(書目)에 '군주론'을 얹어놓았다고 한다. 추측건대 아마 마키아벨리즘에 우호적인 감상을 써 놓았던 것 같다. 그러자 대뜸 여교수가 이렇게 물었단다.

'그럼 박정희 독재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 상황에 있지는 않았으나 질문의 의도는 너무도 명징해 보인다. 그 교수는 아마 틀림없이 박정희를 비판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면 마키아벨리즘을 찬양(?)하는 친구가 박정희에 대해 우호적인 메시지를 표하면 그것을 빌미로 '잘라버릴'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유야 갖다 붙이기 나름 아닌가. '반민주적 의식 함양자' 내지는 그냥 사자 신조 성어 '수구보수'만 써도 대학 문턱에도 발을 못 붙일 테니까.
  
우리 집을 돌아보니 참으로 재미있다. 우리 아버지 세대에 박정희는 민족중흥의 영도자였다. 우리 삼촌 세대에 박정희는 개발 독재자였다. 그리고 우리 세대에 박정희는 히틀러나 피노체트처럼 역사 속에서 쓱쓱 지워버리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그렇잖아도 기부금도 안 모여 표류하던 기념관 건립 사업은 이제 '국민대통령'의 즉위로 영영 물 건너가 버렸다.
  
무슨무슨 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를 사랑하고 압제를 증오한다. 나는 학생 주임의 교문 앞 '독재'도 증오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마 유신시대로 돌아간다면 그곳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잘못 돌려 그보다 10년 전으로 떨어진다면, 역시 살 수 없을 것 같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공로를 인정하면 꼭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럼 당신은 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자유와 민주를 유예해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수단이야 어떻든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전례를 후세들에게 남겨도 좋다는 건가요?' '그건 배부른 돼지의 논리 같군요.' 그래, 나는 배부른 돼지라고 치자. 그럼 그대 고상한 소크라테스들은 밥 안 먹고사는 족속들인고?
  
아방가르드 예술품 같은 초가집에 옷은 하도 깁고 또 기워 성한 데가 없고 밥은 쌀 함량이 5할도 안 되는데, 그나마도 봄에는 못 먹어 밀가루 풀죽으로 문자 그대로 '풀칠'하면서 사는 사람들에게 자유니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말이다.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무렵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국의 한 기자가 길가의 초가집을 돈사(豚舍)로 착각해서, '한국은 양돈업이 발달한 나라'라는 기사를 타전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아련히 전해 온다.
  
그들에게 밥숟가락 놓고 죽을 자유를 허락하지 않아서 용서받지 못할 독재자가 되었고,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의 로맨틱한 개그콘서트를 가로막아서 반민족 반통일주의자가 되었나? 자주국방 해 보겠다고 설쳐댄 덕분에 안보 논리를 써먹는 파렴치한 압제자가 되었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왜 누구도 진지하게 대답해 주지 않고 늘 민청학련이니 인혁당이니 10월 유신이니 하는 논제들만 도마 위에 올려놓으려고 애쓰는 것인지 가끔은 심히 궁금해진다.
  
교수라는 지성인들조차도 반독재 투쟁 논리의 도그마에 얽매여 입에 거품을 물고 박정희의 공(功)도 과(過)도, 아니 박정희라는 인간 자체를 깡그리 우리들의 의식 속에서 지워내고자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가끔은 서글프다. 한 독재자의 경제발전 공로를 긍정하는 것이 수구보수요 반민주주의자가 되는 길이라면, 나는 차라리 그 길을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선조들의 공로도 부정하고 그저 자기만 옳다고 뛰어다니는 공허한 '입'들의 전당에 불과하다면, 그 민주주의는 도로 싸서 가져 가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 홈페이지 [토론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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