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의 시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묵안
2020. 12. 3. 10:39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오니
절절 끓는 구들목에 손이 가고
반가운 얼굴들이 그리워지는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잠시 허리를 펴고 힐끗 뒤돌아본다.
굽이굽이 돌아온 길모퉁이에
하얀 연기 피어오르고
첩첩이 둘러친 산들 너머로
추억의 이야기들이 메아리 되어
어렴풋이 들려 온다.
낙엽이 날리는 저물녘에
검불들 모아 우둥불1) 지피고
둥글게 모여앉아 술잔 돌려가며
목청껏 부르는 노래에 사랑을 실어
젊음을 함께 불태웠던 날들이 그립다.
인생의 초겨울에 접어든 때
희끗희끗 서리 내린 머리에
잔주름 진 아버지 빼닮은 모습으로
땔감으로 더움불2) 지펴 쪼이며
그녀와 어깨 맞대고 앉아 몸을 녹인다.
이따금 부는 찬바람에도
우리들의 이야기 끝없이 이어가며
달고 쓴 추억들 꺼내어 헹구고
까맣게 잊은 인연들 찾아 그려내어
감사한 색깔로 바꾸며 마주 보고 웃는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도
끝없이 이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도
언젠가 어둠 속으로 흔적없이 사라지겠지만
봄이 온다는 희망만은 잃지 말자며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별들과 함께 꿈꾼다.
1) 우둥불 : 모닥불의 옛말
2) 더움불 : 모닥불의 제주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