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夕(추석)
-추석- 유만공(柳晩恭)
黃雲野色賽晴佳(황운야색새청가) 누렇게 물든 들녘 맑은 하늘에 제사를 모시고
秋熟嘗新百物皆(추숙상신백물개) 오곡백과 무르익어 모두 새롭게 맛 보는구나.
但願一年平日供(단원일년평일공) 다만 원컨대 일년 한해살이 오늘 하루 같아서
無加無減似嘉俳(무가무감사가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았으면 하누나.
오늘 처음으로 올리는 한시는 세시풍요(歲時風謠)로 유명한 유만공(柳晩恭) 선생의 세시풍요에 나오는 추석(秋夕)이다. 서로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 오손도손 정을 나누고 햇곡식으로 조상님들께 예를 올리는 날이 바로 추석이다. 들녘은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산과 들은 여러 가지 과일들과 열매들로 풍성할 때이다. 가을이 되어 영글어가는 오곡백과들은 모두 싱그럽고 입에 침이 도는 것들이다. 일 년을 두고 봤을 때 이보다 풍요로운 때는 없을 것이고 하루하루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만도 하다. 이런 날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염원에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은 작품이 아닌가 한다.
추석이 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는데, 그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른 곳을 찾아보니 김매순(金邁淳, 1776년 ~ 1840년)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8월 중추(中秋)에 보면, “가위란 명칭은 신라에서 비롯되었다. 이 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는 또한 가절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두 분의 생존 시기가 비슷하여 그 당시에도 이리 말한 것 같다.
유만공(柳晩恭) 선생에 대한 자료는 세시풍요(歲時風謠)와 관련된 것 외에는 인터넷으로 찾아도 거의 없어서 도움이 될만한 것으로 몇 가지를 올린다.
유만공(柳晩恭, 1793년 ∼ 1869년)은 조선 후기(朝鮮後期) 정조(正祖) 때 검서관(檢書官)을 지낸 문인(文人)이다. 1843년에 일 년 열두 달을 월별로 나누어 한시로 읊은 기속시(紀俗詩)인 『세시풍요歲時風謠』를 편찬하였다. 이 책에는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 그믐까지 다양한 세시풍속이 월별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에 놀이 관련 내용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유만공은 문화 유씨로 19세기 세시기를 지은 『경도잡지京都雜志』의 저자 유득공이 손위 사촌 간이며, 당대 진보적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과 교유했다. 따라서 실학자들과 사촌 형 유득공의 영항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세시풍요』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가람본, 고본 각 두 가지 판본이 전한다. 책은 전체 200여 수의 7언 절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월별로 방대한 세시풍속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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